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하현달이 반달로 정분을 돕고 | 수필작 떠돌이별 2013.01.18 20:02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2.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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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daum.net/gawoul/11303628



       

      하현달이 반달로 정분을 돕고

       

       


      문학기행 가는 날, 작은 딸이 수시모집에 <입학계획서고사>를 보는 날이다. 교통이 불편하여 쫓아가지 않을 수가 없어 새벽 6시 30분쯤에 출발하여 딸과 딸의 친구를 태우고 차를 몰고 강화에 가서 지켜 있다가 같이 집에 돌아오니 낮 2시였다.

      늦었지만 문학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주안역에서 전동차를 타고 가는데 언제 오느냐는 문자와 전화가 온다. 세 여성분들이 성화를 하는데 어디 안 갈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남자 문우들은 문자를 보내도 답장은커녕 전화도 안 준다. 뭐가 재미있는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인가. 그래, 두고 봐라! 역시 여성들한테 잘 보여야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또 깨닫고 빨리 가기를 재촉하여 남춘천역에는 저녁 6시 40분에 도착하였다. 길을 묻는데 공교롭게도 춘천에 사는 아는 시인에게 묻게 되었다. 먼저 알아본다. 참 넓고도 좁은 세상이 지구이다. 대충 묻고 커피도 한잔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택시를 타고 산수농장을 물으니 기사는 알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마시인께 전화하여 택시 기사를 바꿔주고 재차 확인하여 기사를 믿고 몸을 맡겼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길과 산뿐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만큼의 위치에 갔는데 지나온 것 같다고 U턴을 하여 내려가다 가든에 들어가 묻는데 마침 같은 모임장소를 찾아가는 이현철 아동작가를 만났다. 그 분은 춘천에서 오래 살았단다. 같이 가기로 하고 택시요금 15,000원을 주고 옮겨 탔다. 가도 가도 그 길은 그 길인데 나타나지 않았다. U턴을 몇 번 하고 그 집 앞길을 지나쳤는데도 조그만 개울 건너를 어두워서 찾지 못하고 산속을 헤맨 것이다. 그 만큼 산속이 깊었고 물어 볼 곳이 없었다.

      3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1시간 30분을 걸려서 찾아가니 행사 진행은 한참을 지나 2시간이 지났다는데도 분위기는 진지하였다. 김종철 작가께서 「사이버문학」이란 주제의 강의였는데 내가 낄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사회자께서 문학의 발전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 오라고 하였다. 기차 안에서 끄적끄적 거려서 메모를 했는데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혹시 대뜸 물어보면 어쩌나 하고 조금 듣다가 나와 버렸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앉으려고 하는데 늦게 온 문우들은 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 잘 됐다! 식탁으로 가서 나 보다 먼저 온 시인과 인사하고 세 명이 식사를 하며 같이 소주 석 잔을 했다. 모임에 와서 인사도 안하면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없어 살며시 사회자께 다가가 행사가 끝나면 인사나 시켜 달라고 했다. 좋은 만남은 좋은 인연을 만들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만나야만이 우정이 돈독해 질 수 있다.

      사회자께서는 행사가 끝나는 마지막에 우리 세 명을 인사시키기 위해 불러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늦게 온 벌칙을 시낭송을 하라면 하겠다고 말하자, 박수가 쏟아지고 시낭송을 하게 되었다.

      시낭송이 끝나자 생각보다 박수가 힘이 찼다. 잘 한 것 같지 않은데 느낌이 좋다. 이현철 아동작가의 하모니카 연주가 아름다웠고, 오정자 시인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여러 시인이 낭송을 하고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모두 개울이 흐르는 물가 공터에 나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열기 속에 마주하며 폭죽을 터트리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맥주도 마시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장기자랑을 돌아가며 한 사람씩 하였다. 하현달이 반달로 밝게 떠 우리의 정분을 돕고 가을의 스산하고 산뜻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서로 노래를 부르고 도와주는데 나는 오늘 노래 음이 안 올라가고 막힌다. 그래서 차례에 시낭송을 하기로 했다. 20대에 외우고 다녔던 김소월의 시 <초혼>을 잊지 않고 있어 낭송을 했다. 낭송 중에 마시인께서 다가와서 귀에 대고 오늘은 작정하고 왔느냐고 묻는다. 꾀 박력 있게 했나 보다. 나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다. 나서지 않다가 갑자기 뒤바뀐 모습의 찬사이리라.

       문우들은 만나면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워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안 자고 5시 30분쯤에 깼다. 스치는 생각이 늦장을 부리다가는 세수도 제때에 못하는 게 아니가 싶어 그 시각에 볼 일을 보고 씻고 자리에 다시 누었다.

      화장실이 하나뿐인데 아니나 다를까 비좁은 화장실에 줄서서 기다린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바깥에 나오자 한 여성 작가가 아침 사색을 즐기며 서성이고 있어 같이 찬 서리가 내린 새벽길을 산책하였다. 깊은 계곡의 길을 10분을 내려가자 개가 짓고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위로 7, 8분을 걸어야 집이 나오는 산속이었다. 산책하고 돌아오니 기다릴 수 없는 문우들은 개울가에서 찬물에 세수를 한다. 과시하느라 춥지 않다고 건강을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집 좁은 건 살 수 있어도 사람 마음 속 좁은 건 같이 못 산다고 하지 않던가.

      이침 7시 30분에 크리스천을 위한 기도 시간이 있었다. 20여 명이 모여 일요일 예배를 산속 외딴집 이곳에서 가졌다. 아주 특별한 기도였다. 사회자가 있고, 목사가 있었다. 기도문이 있었고, 광고가 있었다. 교회에서 필요한 진행에 손색이 없는 감동의 역할들이 주어졌다. 공학박사 정진기 시인께서 목사 안수를 받는 분으로써의 설교였는데 공학과 기독교를 접목시킨 설교는 아주 명 설교였다. 교회를 손꼽을 정도로 몇 번 안 다녀 봤지만 이 만큼의 감동은 받지 못했다. 믿음을 갖는다면 대전의 문우들께 감화를 받아 나가게 된 것이다. 어느 경제학자는 현 시대를 「풍요 속의 빈곤 시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빈곤 속에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고 모였다고 외치고 싶다.

      아침 식사를 할 때는 한 가족이었다. 한 가족이었으면 행복하다고 진하게 느꼈다. 10시에 버스를 타고 다시 일정에 들어갔다. 의암(毅菴) 유인석(독립운동가)선생의 유적지에 갔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유적지에는 터가 무진 넓었다. 학습장, 체험현장으로 꾸며 놓아 널뛰기, 장작패기 등 잔디밭이 넓어 닭싸움까지 하면서 둘러보는데 족히 한 시간을 걸렸다. 서울과 대전의 문우가 여기서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남자끼리는 포옹을 하였다. 서울로 오면서 점심 식사를 하고 서울 롯대월드 지하에서 간단한 식사와 생맥주를 나누고 일정이 끝이 났다.

      여러 문학모임에 참석해 봤지만 이렇게 알차고 진지한 문학기행은 처음이었다. 서로 노력하고 한 마음이 되어 1박 2일의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이런 알찬 문학모임은 몇 번이고 가고 싶다. 늦게 출발한 관계로 김유정기념관과 문우들과 진진한 토론은 못했지만 나무들이 열매를 맺는 풍성한 길목에서 아주 기분 좋고 아름다운 마음의 수확을 알차게 거둔 문학기행이였다.

      여러분, 박가월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2005년 10월 22일, 23일 문학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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