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외로움, 값진 바다의 풍경 view 발행 | 詩의 산책 떠돌이별 2012.08.30 20:26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3.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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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 값진 바다의 풍경

       

                     박가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보면 오랜만에 노인은 큰 고기를 잡아오지만 상어한테 다 뜯기고 가시만 매달고 지쳐서 돌아온다. 노인이 수십 일을 고기를 못 잡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재수 없는 노인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소년은 낚시에 관한한 최고라고 노인의 실력을 인정한다. 노인의 잠재력과 경험을 살려 낚시를 배운다면 좋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소년은 믿는다.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인내를 가르쳐 주는 소설이다.

      바다는 말이 없는데 사람들은 언어를 빌려 모래알처럼 무수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바다는 어부의 생활터전이지만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성적인 외로움을 달래주는 낭만이 있다. 오영란 시인이 바다의 소식을 전해 줄 때 그 고장에 가고 싶었다. 시인이 다른 고장으로 이주한 빈자리를 여행길에 들린 적이 있다. 삼길포는 아름다운 바다마을이다. 시에는 시인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시인은 바다와 관련된 시가 이곳에서 주로 탄생했다. 바다의 경험도 이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바다에 관한 오영란 시인의 대조적인 두 편의 시를 소개한다.

      <비 내리는 풍경>은 바다에서 생활하며 쓴 시이다. 그러니까 바다를 4년 동안 접하면서 쓴 초기 시로 봐 진다. 시인 자신은 불모지와 같은 바다에서 바다를 배척하고 바다를 사랑했던 것이다. 시는 언어의 기술이다. 남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시어를 개발하여 시를 쓰는 것이 좋은 시가 된다.

       

      썰물이 지나간

      지구 한 귀퉁이에서

      한 사람이 서 있다

      우산을 받쳐 든다고

      등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덜어질까

      폐선 한 척 오래 전부터

      쓰러진 채 버려져 있고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까치 한 마리 비를 맞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무엇을 찾는 것일까

      멀리서 뱃고동 소리 부르는데

      왜 날아가지 않고

      폐선 위에서 비를 맞고 있나

                          <비 내리는 풍경>-전문

       

        <비 내리는 풍경>의 시를 접했을 때 시의 흐르는 배경은 바다와 하늘이 회색빛 외로움이었다. 육지의 정 반대의 환경을 접하면서 바닷가가 지구의 끝이라고 설정한다. 시인은 지구의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내세웠다. 썰물이 빠져나간 거무틱틱한 갯벌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는 처음 보는 바다에 매혹되어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佳月은 선자로 보고 있다. 삶이 바뀐 낯선 곳에서 정붙일 곳 없는 바다를 체험하는 과정이 자신의 우울증과 무력감의 딜레마(진퇴양난)에 빠졌다.

      시인으로서 버려진 폐선이 낭만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염세주의적 쓸쓸한 마음을 그렸다. 현실에 닥쳐 있는 생활이다. 까치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까치는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까치는 의미도 모르고 날아와 앉았는데 시인의 마음대로 조종한 것이다. 날아가지 않는 까치를 등장시킨 것은 뱃고동소리에 사람이 오고감을 나타냈는데 시인은 갈 곳이 없음을 비유했다. 생활의 터전이며 정착해야 할 이기적 욕심 때문에 날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까치를 끌어들인 2인칭 1인이다. 까치로 하여금 쓸쓸하게 다가오는 풍경이 더욱 스며든다. 즉, 서 있는 사람과 까치는 시인 자신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멍하니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는데 받쳐 든 우산이 우스운 꼴이다. 이왕 비를 맞고 처참하게 내던져 져도 그만인데 외로운 삶의 처지에 비를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쓰고 서 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움을 발견한 것이다. 한 데서 까치가 비를 맞고 있는 처지와 별반 다른 것이 없음을 나타냈다. 이 보다 쓸쓸하고 외로운 시는 없을 것이다.

       

      바다가 만삭이 되었어요

      오늘밤 보름달이 뜬다면

      해산을 할 것 같아요

      산고에 겨워 밤새도록 고함을 질러도

      못 들은 척하세요

      왜냐구요?

      놀라면, 바다가 부끄럽잖아요

       

      아침이면, 바다가 낳은

      바지락이랑 소라랑

      햇살이 눈부셔

      돌멩이 속으로 숨을 거예요

      그럼, 애써 들추려 하지 마세요

      아직 세상 빛이 낯설어서 그러는 거니까요

      조금만 멀찍이서 기다려 준다면

      친구가 될 테니까요

                           <바다가 해산을 할 것 같아요>-전문

       

        <바다가 해산할 것 같아요>의 시 구성이 재미있다. 동화적이다. 천진난만한 분위기로 확 바뀐 동심으로 돌아갔다. <바다가 해산을 할 것 같아요>는 바다에 적응하여 바다를 사랑하고 있다.

      석양의 바다를 바라 볼 때 노을빛이 아름다웠다. 일몰의 장관을 보고 감탄하며 시상을 잡았다. 일몰의 환상적인 감동을 만삭으로 받아드렸다. 적절한 표현이다. 家月도 어려서 강가에서 살았다. 붉은 노을은 하나의 잉태로의 기쁨을 느꼈다. 온통 붉은 포구에 상상의 나래를 펴 달밤으로 까지 이어져 생물들이 나와 자유롭게 활동한다. 그것이 해산이다.

      시인이 못 들은 척 하라는 것은 모든 것들이 나와 노는 것을 보고 감탄할 때 놀랄까 봐 역설적으로 속삭여 달라는 말과 같다. 밤에 쏟아져 나온 것들이 놀라서 방해되어 숨어버리면 그들에게 머쓱함을 나타낸다. 인간의 훼방에 미안함을 그린 것이다. 해가 뜨면서 기어들어가는 것은 낯설어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방해하지 않으면 그들은 낮에도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시인은 친구라고 말한다. 미소로 읽을 수 있는 언어드라마이다. 바닷가에 놀러 나가면 돌 틈에 나와 있는 게들이 인기척에 놀라 삽시간에 줄행랑을 쳐 돌 틈에 숨는다. 작고 약한 생물들이라 낮에는 쉽게 발각되어 잡히기 때문에 야행성으로 진화되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바라보며 생물의 상태를 마음껏 상상한 동심으로 돌아간 작품이다.

      <비 내리는 풍경>과 <바다가 해산할 것 같아요>의 두 시는 바다 하나를 놓고 극과 극을 달린다. 환경이 인간을 변화시키지만 인간도 환경을 변화시킨다. 처음 바다를 바라 볼 때 적응하지 못한 낮선 풍경의 바다를 적응해 가면서 바다의 신비함을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인다. 시인은 바다를 놓고 색다른 작대로 펼쳐 놓았다. 자기의 얼굴이 인간세계에 하나 뿐이 없듯 시도 똑같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 개성과 심리, 시를 쓸 때의 환경적 생각이 다른 인간은 구조적으로 틀리게 나올 수 밖에 없다. 다른 각도에서 감동을 주는 오영란 시는 독자의 기분을 얼렸다 녹였다 흔들어 놓는다.   끝.


      200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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