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아름다운 서정시의 산실 | 1시집=황진이도 아닌 것이 별 2008.07.06 23:26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18.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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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daum.net/gawoul/15332686



       

      시 읽다

       

      아름다운 서정시의 산실

      ―서정시의 도래인가

       

       

      시를 움직이는 작금의 내놓으라 하는 시인들의 시는 어렵다고 한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전문 평론가 시인의 위주로 구미에 맞게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문가 집단이 아닌 일반 독자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종종 상 받은 작품에 평 쓴 것을 보면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의 글이 있다. 전문가에 의해 상을 받고 전문가에 의해 좋은 작품이라고 칭송받는 작품이 전문가도 어렵다면 독자들은 시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어 시집을 외면한다.

      잘 나가는 시집이나 유명한 시는 쉽고 이해하기 좋다. 생각을 짜내면서 이해하기를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다가온다. 좋은 시는 단순하다고 한다. 스테디셀러의 작품을 보면 이해하기 편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에 의해 상을 받고 독자들에 의해 읽히는 시가 좋은 시이고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독자를 위해 쓰고자 하는 열의와 시인들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 이 병폐가 살아지지 않는 한 독자는 없다. 동서고문을 막론하고 명시는 어려운 시가 없다.

      ‘시를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시인은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고 했다. ‘내 필요에 의해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 시를 쓰고 있다’고 사석에서 한 적이 있다. 마음의 자화상을 남길 수 있는 글이 되고 상처를 위로 받고 사랑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값진 모노드라마처럼 자신을 그려놓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자화상을 드러낸 전문을 보면,

       

      경험이다

      또는 간접 경험이다

      이상과 상상의 나래를 폈다

      마음을 다 드러냈다

      시는 내 얼굴이다

      어떤 관계로든 내 자화상이다

      알몸을 가로수에 세운다.

      ― <치부恥部> 전문

       

      시인의 말과 같이 시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시인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시를 보면 마음이 성격까지 보인다. 朴佳月 시는 잔잔하게 너울지는 물살처럼 가슴을 젖어드는 시가 많다. 그는 20대 후반에 시집을 냈고, 그때 쓴 시는 부끄러워 남에게 보여 주지 못한다고 한다. 30년 동안 써온 주옥같은 시를 모아 시집을 내는 것이다. 4부로 각 16편씩 실었는데 특별한 장르를 구분한 것은 아니고 정리하게 좋게 나누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대 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림의 신분은 가난한 것이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

      그대 오며는 좋은 거지만

      오지 않아도 그만이다

      사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니

      안달하지 않는 마음이다

      언제 올 줄 모를 기대 속에

      정을 듬뿍 담지는 않는다

      가난해도 넉넉한 바람이니까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희망을 살짝 얹고 산다

      그대 오지 않아도 슬프지 않게.

      ―<기다림에 대하여> 전문

       

      이 시를 보면 이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희망을 기다리는 노래이다.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없는 허허로운 벌판에서 유를 창조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기다림은 가난하다. 약속이 없는 것에서 희망이란 실체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지금은 가난할지언정 노력하여 얻으려는 보람을 이야기한 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오지 않아도 상심하지 않게 마음을 다스리는 감정까지 예상하고 무한한 기다림으로 그대 또는 희망을 염두해 두면서 용기를 버리지 않고 산다는 의지표현의 시이다. 우리는 잔뜩 기대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포기하는 실연에 헤어나지 못하는 폐인이 된다. 이런 독자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교훈이다.

       

      파도는

      도끼가 되어

      큰 돌을 쪼개 내고

      파도는

      맷돌이 되어

      줄곧 돌을 갈아댑니다

       

      얇게 깎고

      곱게 갈아서

      은색으로 다듬어

      파도는

      모래알을 밀어냅니다

       

      조개가 살고

      해녀가 찾는 바닷가에

      큰 파도

      작은 파도는

      넓은 모래밭을 만들어 냅니다.

      ― <파도> 부분

       

      위 시의 전체를 읽어보면 파도에 의해 모래가 생긴 까닭이 설득력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박가월의 대표적인 시로 추천하고 싶다. 이보다 감동을 주는 시가 많겠지만 모래가 해변가에 왜 생기는지가 전설처럼 느껴진다. 시는 시를 쓰는 자의 합리화시킬 특권이 있다.

      朴佳月 시인은 관악산을 수백 번을 올랐다고 자부한다. 근무지가 관악산 밑에 자라잡고 있어 시간만 나면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오후에 올라갔다고 한다. 필자도 몇 번 같이 시인하고 따라 나선 적이 있는데 산을 좋아하고 잘 탔다. 산을 타고 내려오면 꼭 술을 한잔씩 했는데 많이는 못 들어도 즐겨서 어울린 기억이 난다. 십수 년간을 매일같이 바라본 관악산의 모습 한편을 담았다.

       

      능선이 잔설을 등짐지고

      청솔가지에 찬바람이 일어

      계곡 깊숙한 곳은

      아직 얼음이 닷 근이다

      까투리 장끼가 쉬어 놀던

      햇살 품은 곳으로부터

      겨울이 떠나는 계곡물은

      얼음장 속을 핥아

      봄의 무게만큼 바다로 향한다.

      ― <冠岳山스케치> 부분

       

      3월 어느 날 산에 오르는데 산비탈 양지에 봄기운을 감지한다. 양지에 봄기운이 돌고 있는데 산등성이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응달에는 얼음장이 두껍게 겨울이 아직 머물고 있다. 봄이 점령한 것만큼은 봄이 와 있고, 겨울이 있는 산야를 한 폭의 그림을 이 시에서 연상해 그려도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봄의 경계선이 세밀하다.

       

      네 년이 황진이도 아닌 것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리도 몰랐던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여인아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 곡두

      네 년이 무엇이관데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냐

      黃眞伊가 있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보고 싶은 미운년.

      ― <황진이도 아닌 것이> 전문

       

      황진이가 무슨 죄인가. 이렇게 막말로 끌어들여도 밉지가 않은 것은 어인 일인가. 시인은 황진이를 무진 동경했나보다. 여기에 어느 계집이 나타나면서 마음을 몽땅 빼앗긴 것은 아닌가. 사랑할 때 뭐가 보이겠는가. 역설적인 표현으로 황진이를 끌어들인 여인이 누구인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표현이다. 사랑 시에 이만한 사랑 시도 없다.

       

      기쁜

      설렘도

      잠시

       

      반가운

      포옹도

      잠시

       

      좋아하자마자

      질퍽거리는

      조루

       

      어설픈

      경험

      ― <첫눈> 전문

       

      긴 소설로 설명한들 이렇게 다가올까. 한 눈에 쏙 들어온다. 한 눈에 사로잡는다. 첫눈이 사내들의 첫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사내들의 첫 경험의 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첫눈이 내릴 때 설렘과 벅찬 감정을 느낀다. 그 기쁨도 잠시 눈이 내리자마자 땅에 닿으면서 녹는다. 시인은 이것을 눈과 대비시켜 첫 경험을 조루로 표현했다. 남성들의 첫 경험은 금방 발기했다 금방 시들어지는 생리적인 현상을 말해 주고 있다. 박가월 시인은 짧은 서정시에 감동을 주는 시를 자주 목격한다. 배울 점이다.

       

      떠나 버린 사랑을 치유하기 위해

      숱한 이야기를 나누던 주안역 광장을 찾는다

      공중전화기에 매달려

      통화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이유가 있다

      숙녀는 애인과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하고 유유히 사라지는데

      그 옆 여인은 실연인 양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선다

      신사는 골똘히 무슨 생각에 잠겨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걸고,

      청년은 참다못해 휴대폰을 박살낼 것처럼

      큰소리로 친구한테 욕설을 퍼붓는다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어느 갈비집 앞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나오라고

      여유가 있는 행복한 얼굴로 통화를 한다

      전동차는 와서 사람을 부리고

      역 광장에서는 가족, 연인 또는 친구들을 만나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공중전화기를 바라보며 그녀를 생각한다

      서로 잘못도 없이 헤어져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그리움을 어떻게 설명할까

      주안역 광장에는

      내 경험을 연기하는 사람들처럼

      다양한 희로애락을 연출하는 모습으로 돌아들 선다

      전동차는 오고가고 만나서 돌아가는데

      나는 만날 약속도 없고

      전화 통화도 없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낮게 불러 본다.

      ―<주안역에서> 전문

       

      필자가 평에 올리는 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문학 활동에서 관심을 받은 것을 위주로 시집을 묶었다. 시인은 <주안역에서>의 시를 모임에서 즐겨 낭송했다. 평상시는 목소리가 작은데 낭송할 때는 우렁차다. 외우고 다니는 시가 몇 편 있어 즉석에서 낭송을 청하면 들려주곤 했다. 사석에서 한번 물어봤다. 이 시가 탄생한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산책 삼아 집 부근 주안역을 자주 나가 공중 전화기에서 전화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갈잎은 뜨락에 뒹굴고 세상은 고요하고 쓸쓸하다

      마음은 한없이 빛나고 사랑은 그립다

      아, 상현달 비추는 이 가을밤에

      지나는 길손이라도 붙잡고 그리움을 하소연하고 싶다.

      ―<그리움의 神話> 부분

       

      박가월 시인을 보면 너무 착하여 고백 한번 못해 봤을 것 같다. 그래서 그리움의 시가 많은 것 같다. 시인이 말하기를 내성적이라 어디 가서 말을 못하여 시로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말한다. 쉽게 쟁취하는 사람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쓸 리는 없다. 가 보지 못하는 곳을 동경하여 시로 표현했으리라.

       

      너의 죽음이

      국민장이 되는구나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업적은 미비한데

      화려한 장례식에

      명산은 문상하느라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단풍 1> 전문

       

      시인의 시를 보면 다양한 시를 쓴다. 등단은 늦게 하였지만 오래도록 써온 흔적과 꾸준히 노력한 시력이 있다. 시인이 사물에 관한 시를 쓸 때는 적절이 그 소재에 잘 맞아 감동을 준다. 위에서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지고지순한 시를 쓰는가 하면 여인네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휘어잡는다. 때로는 감칠맛 나게 성묘사도 적절하게 표현한다. 우리말도 때로는 잘 찾아 적절하게 쓰고 있다. 우리 시대에 트로트의 노래처럼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서정시의 산실이며, 서정시는 다시 도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를 들추어 평을 하자면 마음에 드는 시가 많아 끝이 없을 것 같다. 지면의 관계도 있고 앞부분만 소개하였다.

       

      이 시집을 전체를 읽어보면 감동을 받고 시인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한권의 시집을 읽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특히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평에 소개하지 않은 시 <황진이> <가을여행> <장날 반 보기> <저러다가 오래 못 가지>를 주목해서 꼭 한번 읽어 보기 바란다.

       

       

      오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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