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시에 그려진 자아 죽기기 view 발행 | 詩의 산책 별 2012.12.13 00:41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2.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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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daum.net/gawoul/16140427



      시에 그려진 자아 죽기기

       

           박가월

       

      원점으로 돌아가야지

      누추한 흙에서 비롯된 나

      추락이 무서운

      어린 새새끼처럼

      지워지는 경계와

      시끄러운 정체의 틀을 벗고

      민들레 홀씨 모습으로

      희미하게 낮아져야지

       

      나 이제 스르르

      비상의 날개를 접고

      무시무시한 낙하를 꿈꾸며

      원점으로 돌아가야지

      생존의 낭떠러지 밑

      저 한없이 낮은 곳

      아무것도 뵈지 않는 곳에서

      당신 하나로 완성되는

      나를 위하여

       

                    오정자 [희미해지기]-전문

       

      스스로 자기를 다운시킨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한 시이다. 이 시를 보는 순간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자기 살을 깎아내리는, 자기를 죽이는 감정에 몰두하여 자기를 추락시킨 날개처럼 가라앉혔다. 비 오는 날 한없이 작아지고 싶은,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 감정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상황을 겪었으리라. 왜 스스로 슬퍼지고 싶은 분위기 말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생각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 말은 인간이 흙과 밀착되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에서 먹고 흙에서 구하고 흙이 인간의 뿌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흙에서 자라 생이 끝나는 날도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최후로 전제해 놓고 이 시를 이끌어 갔다.


      우리는 스스로 자학할 때가 있다. 감성에 젖어 자기를 스스로 불상해지고 싶은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슬퍼지고 싶은 것이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비련의 주인공을 자청하는 현실적 합리주의 외로움에서 비록된 자아포기적 미묘한 특색을 전달하고 싶은 비관론이 아닌 낭만을 찾는, 현실도피도 아닌 현실감성주의자를 자청한 것이다.


      인간의 본능은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을 지녔다. 이 시의 제목 자체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낮아짐이 원초적인 본능을 삼았다. 현실적인 곳에서 비현실적인 낮춤을 자아내는 것은 본능을 억제하고 인간의 생식을 죽이는 즉, 성에 비유한다면 성기능을 억제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남이 예상하지 못한 자신에게 제동장치를 단 것이다. 우리가 한번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추락시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종의 자아적 억제기능의 의도 말이다.

      누추한 반대말은 깨끗함, 성스러움이다. 왜 누추함을 택했을까. 흙은 소중하고 우리의 기본이다. 그것을 누추한 내면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자하는 표현의 일환으로 설정한 일종의 외도이다. 누추함이 또는 버림이다. 희미해지는 것은 낮아지고자 하는 자신의 살을 깎아내리는 최후의 밑바닥까지 자기를 가라앉혔다. 앞서 밝혔듯이 인간의 근본은 올라서려는 욕망을 지니고 산다. 욕망을 벗어난 자신의 자아를 죽이는 시는 처음 접한 시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오정자 시인에게서 다른 시인이 시도해 보지 못한 자아를 낭떠러지까지 내몰아 완성된 자기를 찾고자 한 詩이다.

       

       

      2006.9.10.

       

         마른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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