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정은 정을 낳고 view 발행 | 수필작 떠돌이별 2012.12.20 05:00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2.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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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 정을 낳고

       

                 박가월

       

      한국시사랑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대전 시화전에 「새장에 갇힌 새는 말하다」의 시로 참가하게 되었다. 3월 1일을 기해 오랜만에 대전(토요일)에 내려갔다. 여러 일가친척이 사는 관계로 겸사겸사 일찍 내려간 것이다. 사촌형님은 마침 교장선생님으로 승진하여 축하도 드리고 집도 옮겨 마음먹고 들르기로 했다. 사촌형님 부부가 교직에 몸담고 있는지 30년이 넘었다. 형님은 형제를 좋아하는 터라 사촌형제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형수님은 그에 질세라 만날 때마다 아주 친절하게 정을 듬뿍 담아 반겨준다. 



      대전에 외사촌 누이동생이 있어 내려간다고 전화를 하자 먼저 들르라는 것이다. 비슷한 나이로 같은 동네에서 자라 다정한 해라로 지금도 지낸다. 그리고 고향에서 남매같이 지냈던 이웃동생도 보고 싶어 먼저 들르기로 했다. 동생이 언니(누님)네 집에 가 있으라고 하여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님 집에 찾아가 누님 내외와 기다렸다. 작은 가게를 하는 동생은 장사를 끝내고 오느라 한참을 기다려 부부가 저녁때 쯤 도착했다. 이웃동생하고 같이 온다더니, 나가서 저녁을 먹고 전화하여 만나자는 말에 그렇게 알고 우리 일행은 외식하며 술 한 잔씩 하고 노래방까지 갔다.

       

      누님 집으로 가면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 하기로 하고 이웃동생과 친한 친구인 동생이 전화를 한다. 아니 만난다는 눈치이다. 그 짐작은 맞았다. 통화도 못했지만 느낌이 와 닿았다. 먼저 만나자고 항상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전화도 하지 않는다. 동생이 말을 한다. 이웃동생이 암으로 수술하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내일 만난다고는 했다는데 피하는 것 같았다. 자기 병을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그리움의 神話」를 쓰게 한 시의 주인공인 그녀가 암에 걸렸단다. 아름답기만 하던 동생이 암에 걸리다니 그리움도 한순간에 아프게 무너져 내린다. 이웃동생은 청주에서 열린 청주꼬마미스코리아였다. 예쁘고 깜찍했다. 그때 당시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받았다. 우리는 이십대까지 부모가 인정하는 오누이로 지내다가 각자 결혼하면서 십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웃동생이 먼저 나를 찾는 바람에 5년 전부터 동생을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움의 시를 가장 많이 쓰게 해준 여인이었다.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의 커피는 사라지고 마음이 씁쓸하고 맥이 빠져 누님 집에 와서 커피를 나누는데 사촌형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형 집이 더 좋지 않느냐고 한 시고 두 시고 기다릴 테니까 오라 한다. 술을 한 잔 한 기분이었다.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어정쩡한 말로 변명하고 미안함을 느끼면서 전화를 끊었다. 내일 대전 시청에 가서 시화전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선 이곳에서 가깝기 때문에 누님 집에서 자는 것이 편하였다. 

       

      다음날 오후에 십분 정도 걸어서 시청으로 갔다. 참가자들을 만나서 바쁘게 준비작업을 하고 끝날 무렵에 전화가 온다. 형님은 아침부터 예식장이다 모임이다 볼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어 올 무렵 전화를 한 것이다. 바로 가겠다고 전화를 끊고 시화전의 준비에 참여한 문우들께 먼저 간다고 인사하고 형님이 사는 버드내 아파트로 택시타고 가니 형수님이 저녁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형님이 형수님을 처음 만난 기억은 형님이 서산으로 총각 선생님으로 부임하면서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결혼식에도 참석 못하고 형수님이 시집에 다니러 왔을 때 처음 만나 형수님이 한 밥을 먹게 되었다. 콩밥을 했는데 설익어 비린내 나는 밥을 못 먹겠는데 형님은 먹고 있어 같은 또래의 조카와 아무소리 못하고 콩을 골라내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형수님의 친정은 서산에서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 당시의 잘 사는 집의 외동딸로 밥도 안 해 보고 시집와서 배워가며 하는 살림이라는 후일담이었다.


      형님께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저녁과 술을 들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이 흐른 밤 시간에 영화 ‘태극이 휘날리며’를 보러 가자고 형님과 형수님이 말을 꺼낸다. 보고 싶은 영화라 가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상영극장을 찾으니 대전에 있는 극장은 모두 매진이 되고 변두리 극장에 딱 한 군데에 좌석이 있어 자가용을 타고 형님 부부와 같이 영화구경을 하고 집에 오니 열두 시이다. 집에 와서 또 술을 나눈 이야기의 밤은 깊어 갔다.

       

      아침상을 받으니 나를 위해 보신을 해놓았다고 끓여서 내놓는 것이다. ‘이렇게 황송할 때가!’, 아침상을 잘 받고 고향의 친척 결혼식에 갈 수 없어 형님 편에 봉투를 전하고 커피를 나누는데 형님 부부가 어제 저녁부터 ‘화분을 사줄까’ 상의를 하는 것 같더니 꽃 대신 축하의 봉투를 주는 것이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당황하여 사양을 했지만 받는 것이라고 하여 거절도 못했다. 그리고 형수님은 언제 준비를 했는지 손에는 한 줌 손바닥만한 꽃을 여러 송이 쥐고 시화전에 들렸다가 고향의 예식장에 간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 꽃은 예식장의 축하로 전하는 꽃이거니 하고 그때까지도 그 꽃의 의미를 몰랐다.


      형수님은 대전 시청 시화전에 들어서면서 가월의 액자를 찾더니 준비해 간 테이프와 가위를 꺼내어 형님과 같이 액자 밑에 꽃을 매다는 것이다. 액자가 더 빛났다. 형수님의 딸이 화가라 그런 세심한 부분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마음의 배려를 읽을 수가 있었다. 작지만 어떤 꽃보다 소중한 값어치를 느꼈다. 마음이 흐뭇했다. 나는 기뻐서 아는 문인들을 만날 때마다 형수님이 달아 준 것이라고 자랑을 하니, 자랑할 만하다고 덩달아 기뻐해 준다.

      일련의 아름다운 마음을 베푸는 형님의 공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조의 공으로 돌리고 싶다. 형수님을 만난 형님은 복 받았지만 나도 복이다. 부부의 돈독한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알 수 있다. 나도 형님의 부부처럼 가정의 화목을 노력하리라.

       

       

      200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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