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낚시터에서 만난 시인 | 수필작 별 2013.01.11 20:09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2.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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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터에서 만난 시인

       

                     박가월

       

      잠적해 버린 시인을 만나기 위해 우리 일행은 떠났다. 시인의 홈페이지 구름밭에 글도 안 올리고 자취를 감춰 버린 뒤, 우연한 기회에 여행을 하던 중 시인이 살던 삼길포에 들렸다가 오시인을 생각하며 쓴 [시인이 없는 포구에서]의 시를 구름밭에 올렸다. 사정이 있어 이사를 갔는지 글 쓸 여유도 없는지 홈(=페이지) 관리도 않고 있었다. 숨어서 지내는 것 같아서 부군이 시를 보고 내게 쪽지를 남겼다. 어디에 있으니 홈에 들어와서 확인하고 놀러오라는 것이다.


      연기나는 마을의 닉네임으로 들어가 확인한 결과 큰골낚시터에 커피향이라는 닉네임으로 다른 홈을 지키고 있었다. 시인이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경계할 것 같아 자존심을 세워주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날 것 같아 [물버들]이란 삼행시에 참여하고 짧게 가입인사를 했다. 그런데 바람이란 닉네임이 아는 척하고 꼬리글을 다는 것이 아닌가. 부군인 줄 알았다. 그러던 중 삼행시도 없어지고 오시인이 입장이 난처하여 3행시도 없앤 것 같아 글도 안 올리고 가끔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3행시를 다른 곳에 옮겨놓았고 윤시인이 내가 온 것을 짐작하고 꼬리글을 달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며칠이 안 되어 오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자주 전화를 했었는데 오시인은 3개월 동안 연락도 없이 홈에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 이전부터 홈 운영도 잘 하지 않았고 연락을 멀리하였다. 그 홈 공간을 내가 지켜주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반가우면서도 서운했다. 3년 동안 만나 본적은 없지만 다정하게 지낼 정도로 정을 주고 지냈는데 소식이 없다는 것에 조금 삐져 있었다. 오시인도 반대로 내가 그러했으면 삐졌을 것이다. 예로 내가 카페를 만들고 얼굴을 마주대하는 문우 한두 명이 먼저 들어와 있었는데 멀리서 살면서도 먼저 안 알렸다고 서운해 했다. 그 정도로 가까운 우정이 되었다. 우리는 내가 먼저라는 인식이 만난적은 없지만 우정이 자리 잡았다.


      부군이 쪽지를 보낸 사건을 이야기했는데 말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알려도 내가 알릴 텐데 알렸다고 핀잔 좀 들은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하자, 당당한 목소리로 알면 찾아오라는 것이다. 서산에 살 때는 찾아간다고 하면 못 오게 펄쩍 뛰었다. 사정이 바뀌었다. 이제는 부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빨리 오라는 것이다. 나는 사정이 없나요, 얄미워라. 모르는 사람처럼 갑자기 찾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전화 받고 2주 만에 찾아갔다. 오시인의 삶은 생략하고 우리의 만남을 이야기 하자.


      내가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마시인이 차를 가지고 가기로 하고 오작가님이 모자라는 비용을 충당하고 나섰다. 얼굴도 모르고 3년간 사귀어 온 문우라는 것만 알고도 먼저 가고 싶어 적극적으로 서둘러 나서준 것이 쉽게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시인이 큰골낚시터 게시판에 간다는 글을 남기고 먼저 추진을 한다. 마시인과 오작가님 그리고 나와는 성격들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제각각 많이 난다. 12년 차이에서 내가 중간에 끼었다. 누가 물으면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느라 같이 다닌다고 마시인이 주장하는 말이다.


      가면서 오시인을 어떻게 맞이할까! 한번 포옹이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는 우스개 이야기를 하며 장호원 큰골낚시터에 오후 다섯 시에 3시간 걸려 도착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제주도에서는 태풍이 불어오고 있어 영향 탓 같았다.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또 사진으로 봐 와서 인지 가게로 들어서자 서로 쉽게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수줍음이 많은 여인이었다. 포옹은커녕 악수를 청하여 그것도 수줍게 했다. 작지도 않지만 크지도 않은 키에 소박하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약했다. 첫 만남에 나를 평하기를 [막내 같은 인상이 풍긴다]고 오작가님께 자문형식을 구하여 반강제적으로 동의를 얻어내 합리화시켜 버린다. 아마 짓궂게 놀릴 때 글에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토요일이라 낚시터는 바빴다. 우리 일행을 신경 쓰느라 서로 부담이 갈 정도이다. 오시인 보다 부군이 더 잘해준다. 초청도 먼저 하였거니와 순박한 인상에 키도 크고 등치가 좋다. 시를 쓰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호인이다. 우리를 위해 전망이 좋은 무인도라는 좌대의 방을 손님이 원해도 비워두고 올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낚시터 자리까지 차로 이동하여 짐을 옮기면서 오시인과 우산을 같이 쓰게 되었다. 비를 맞으니 팔을 잡으라고 했더니 처음 보는 사람한테 팔을 잡느냐고 우산 밖으로 도망간다. 아이고야 순진해라. 여장을 푸는 동안 마시인은 낚싯대를 담그고 오시인과 부군은 저녁 준비를 해가지고 왔다. 약속한대로 닭도리탕에다 소주를 준비해 가지고 왔다. 내가 오면 해주기로 한 선물이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앉았는데 바쁘다는 전화가 오자 오시인이 갔다. 10분도 같이 못 앉아보고 돌아갔다. 우리가 낚시터로 이동하면서 내린 비는 밤새도록 장대비로 쏟아졌다. 술이 모자라 가지러 가 오시인이 보는데서 술을 세병 더 꺼내니 그렇게 많이 먹느냐는 것이다. 밤새도록 먹으면 모자란다고 올적에 전화하고 오라고 했다. 밤 10시에 오기로 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아이들을 시내에서 데리고 올 수 없다고 내일 만나자는 전화를 한다. 그렇게 회포도 풀지 못하고 밤은 깊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술을 너무 많이들 먹는 것 같아 못 왔다고 변명을 하는데 수줍은 탓 같았다.


      펴 논 낚싯대에 고기는 안 잡히고 오시인은 아니 온다 하고 두꺼비만 잡다가 10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호숫가에 쏟아지는 장대 빗소리를 들으니 잠이 깊이 들지 못했다. 바람에 열어 놓은 문은 덜커덩거려 잠을 깨우고 오작가님은 술이 어설퍼 잠이 안 온다고 술을 더 먹겠다고 일어나 쪼그리고 앉아 소주를 혼자 홀짝홀짝 마신다. 몇 병을 해치웠을까.


      마시인은 잠이 들고 나는 잠이 들려고 하는데 그때부터 오작가님이 화장실을 드나들기 시작하여 잠을 깨운다. 그러더니 급기야 비속에 슬픈 노랫가락은 청개구리 심보는 저리가라였다. 문은 덜커덩거리지 노랫소리는 처량하지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바람까지 불어 잠자기는 틀려 버렸다. 새벽을 맞으니 노랫소리도 잠잠해지고 바람도 잦고 비도 그쳤다. 새벽은 물이 불어나 좌대가 고립되었지만 거짓말 같이 조용하다. 그때부터 마시인은 낚시를 한다고 좌대를 누비고 다니고 오작가님은 잠을 자는 것인지 속이 쓰려서 그런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조용하다. 나만 손해를 본 것이다. 잠도 못자고 오시인을 보러왔다가 같이 이야기도 못 나누고 나 때문에 가서 주인 행세를 남들이 한다.


      마시인은 낚시에 빠져 아침도 거른다. 오작님은 속이 안 좋아 식사도 거르고 나만 아침 점심을 챙겨먹게 되었다. 아침 10시에 철수할 줄 알았는데 마시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낚싯대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오작가님은 한술 더 떠 오랜만에 나왔으니까 내일 가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며칠 계속 늦은 귀가에 날까지 새웠는데 나만 애타는 것이다. 그 동안에 윤시인이 구름밭에서 알고 지냈는데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 이곳 낚시터에서 처음 만났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같이 글을 쓴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친해질 수가 있었다. 좋은 시인이다. 낚시도 하고 오후 다섯 시가 될 무렵 비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마시인은 언제 가느냐는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더니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자 낚싯대를 거둔다. 철수하여 가게로 왔는데 큰골낚시터 홈에서 뜻을 가지고 시작한 삼행시 으뜸상을 탄 초등학생이 아버지와 같이 와 있었다. 두 번째 행사인데 초등학생이 일등을 한 것이다. 계속 글을 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문학에 소질이 있는 어린이였다. 큰골에서 내놓은 술과 빈대떡을 먹으며 재미있는 글을 올리는 뒷동네아저씨와 함께 환담을 나누다 저녁 8시에 일어났다. 가끔 찾아오기로 하고 윤시인과 이야기도 못한 채 서울로 왔다.

      회포를 다 못 풀어서인지 아쉬움이 더 쌓인다.

       

       

      2004.6.30.(6월 20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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