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명료한 함축의 美 | 詩의 산책 별 2012.04.07 05:00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5. 7.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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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daum.net/gawoul/16140326



       

      명료한 함축의 美

       

       

      손톱은 길지 않게 투명해야 한다.

                                                                      ―[美] 전문

       

      [손톱은 길지 않게 투명해야 한다]는 고현주 시인의 시이자 시집 제목이다. 고현주 시인은 스토리문학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도토리>라는 ID를 쓰고 있다. 요즘은 <도톨>로 불린다. 고현주 시인의 시는 짧고 명료하게 함축의 미로 표현하여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소문도 없이 [가슴으로 안은 풍경(1998년]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이다. 필자가 고현주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스토리문학관(2001년 11월)에 처음 들어와서 낯설게 느껴지던 공간에서 그의 시 [고양이의 밤]을 읽고부터 알기 시작했다. 아래의 시를 보는 순간 시선이 정지했다.

       

      눈에 불을 켜고

      어둠의 외줄 담을 타는

      고양이

       

      주어지는

      밤의 길이는 같아도

       

      쥐구멍 앞에 발톱을 세운

      고양이의 밤은

      기-일고

                                                                      ―[고양이의 밤] 전문

       

      한마디로 먹이를 놓고 고양이의 기다리는 시간(밤)은 같아도 고양이의 발톱을 세우고 기다리는 시간은 긴 여운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목을 빼고 기다려지는 느낌을 준다. 입구를 고양이가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 쥐는 사지가 오그라들고 떠는 밤은 황천길을 오고갔을 것이다. 시의 맛이란 짧으면서 여운이 길게 느껴져야 좋은 시이다. 이 시가 그것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잘 썼다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흔히 기준이 불분명하다. 위 논리와 상통하지만 보편적인 타당성은 길고 짧고를 떠나서 우리가 읽기 편하고 쉽게 와 닿는 시가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다. 고현주 시는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어 좋다.

       

      死에

      生 앞에 묻혀야 할

      뿌리여

                                                                       ―[족보] 전문

       

      산자 앞에 이어지는 죽음을 의미한다. 즉,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우리 앞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가며 장례를 치러야 하는 대대로의 묻어주고 묻힘을 이어가는 뿌리를 그린 것이다. 석줄 안에 가계도가 눈에 그려진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길게 토를 달면 시인은 넋두리로 들릴 것이다.

       

      푸르른

      한철을 놓지 못하고

       

      아직껏

      이승의 끈을 놓지 못하고

       

      외롭게

      외롭게 떠나는 혼아

                                                                      ―[유골] 전문

       

      알기 쉽게 3연 6줄에 산 인생을 다 그려놓았다. 1연의 <푸르른/한철을 놓지 못하고>고는 젊은 날의 화려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연의 <아직껏/이승의 끈을 놓지 못하고>는 인생을 살만치 살았는데도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달하는 모습을 그렸다. 마지막 3연은, 결국은 혼자 가는 인생인데 죽으면 그 만인 것을 세상의 부질없음을 나타냈다. 장가도 안간 나이에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사선을 넘나드니 고현주 시인은 윤회하여 다시 태어난 경험자가 아닌 가 싶다. 그것도 6줄에 사십 인생이 칠십 인생을 함축하여 최대한의 짧은 글 속에 집어넣고 아름답고 간단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무리 없이 마무리했다. 스토리문학관에 짧은 시의 대명사라면 고현주 시인을 칭하여도 하자는 없다. 그만큼 많은 단수를 썼다. [손톱은 길지 않게 투명해야 한다]의 시집을 보면 70여 편의 시에 짧은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반은 20행이 훨씬 넘는 긴 시가 많았다. 한쪽으로 치우쳐 보아 와서 그렇지 언제 장시도 썼는가 할 정도로 많이 썼다. 한 권의 시를 통 털어보건대 깊이가 있고 작품이 고르다. 아는 문우로서 기쁘고 반갑다.

       

      힘주어

      밑으로는 버리는데

       

      퍽, 퍽,

      조금씩 위로 쌓이는 건 또

      무엇인가

       

      시리게

      엉덩이 밑으로 바람은

      휘돌아 나가고…

                                                                      ―[해우소] 전문

       

      제목과 시를 보면 한겨울 산사에서 볼일을 보다가 배설하는데 얼어서 쌓이고 엉덩이가 시린 것에 착안하여 이 시를 썼다. 배설물을 다룬다는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구수한 된장 맛은 아니지만 싫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시가 바람을 타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듯 숙녀의 잘빠진 다리마냥 매끄럽다. 인간은 타협을 해야 할 것이 꼭 한 가지 있다. 배설을 막으면 어디로 가겠는가. 순리대로 사는 것이 반란도 없고 자기가 살길임을 이 시에서 보여준다. 버림에는 귀찮지만 살을 그만큼 바람에 노출시켜 맡겨야 한다. 불의를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타협이 인생의 반은 성공이라 볼 수 있다. 정치판에서 느낀다.

       

       

      2003년 1월 시집을 받아 읽고, 이글로 감사와 축하를 대신한다.

       

      박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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