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577b8ef413b228b8045feff917a229419ec04aa3" /> 믿음과 배려 | 수필작 별 2014.05.14 21:12 :: IRA♧

IRA♧

순수한 열정을 닮고 싶은 배움쟁이

  • 2019. 4. 28.

    by. ariariari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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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배려

       

          박가월

       

      얼마 전, 밤 10쯤. 잠자리에 들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특히 밤인데 여 시인한테서 전화가 걸려올 일이 없는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모두가 예의상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월 시인님, 저 혈압에 쓰러졌는데 집에 좀 데려다 줘요.”
      순간 거절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호구포역 큰 건물을 알려주며 그곳으로 와 전화를 하라고 한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아는 시인이었다.
      인천에서 7년을 알고 지냈다. 여 시인은 아는 사람이 많을 텐데 나한테 부탁했다는 것은 내가 부근에서 가깝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니 안 갈 수가 없다.
      서울의 한 친구가, ‘친구라면 고속도로에서 위험이 처했을 때 와달라면 달려가는 것이 친구’라고 누차 강조함을 들어왔기 때문에 스치는 생각에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보고는 아는 시인이 혈압에 쓰러졌는데 집에 데려다 달란다고 옷을 주어 입으니 아내는, 그 남자는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느냐 하기에 그렇다고 했다.
      아내가 남자로 짐작해 굳이 여성라고 말하지 않고 수월하게 대답만 해도 되었다.
      여성이란 사실을 알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더구나 남편은 뭐하고 나 보고 오라느냐는 둥 말을 걸어오면 말이 길어질 것이다.
      나 역시 짐작은 가되 자세히 알지 못한다.
      차키를 주며 기름이 없으니 넣고 가라고 한다. 아침마다 아내가 애들을 출근시키느라 차를 사용한다. 이상하게 내가 집에 있어도 애들은 전철역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날 시키지 않아서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지금은 귀찮지 않고 편안해서 좋다.
      차를 출발시켜 가는데 여 시인이 간호사로 있는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주소를 알려준다기에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다.
      네비게이션으로 가서 건물을 찾느라 조금 헤맸지만 요양원을 찾아들어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심각하게 보였다. 혈압이 아직도 높아 누워 있었고 중환자 같았다. 내가 도착하고서도 한참 누워 있다가 일어나며 토했다. 인하대병원으로 데려다 다란다. 집으로 가려다 응급실로 간 것이다. 자신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병원으로 갈 요량이었다면 앰뷸런스를 부르지 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응급실로 도착하여 CT촬영을 하러 간 사이에 병원 현관에 차를 대놓았기에 주차를 다시 하고 들어가니 응급 대기실에 다시 와 있었다. 내일 직장에 가지 말고 있어주면 안되느냐고 한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니 의지 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쓰러져 누우니 당황하여 딸 둘만 있어 걱정이 되었던가.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에 피가 조금 고였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여 시인이 심각하게 받아드려진다.
      내가 정년을 하고 두 번째 잡은 직장이 집에서 새벽 5시 30분에 나가는 직업이다. 팀웍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결근하려면 미리 통보를 해줘야 한다. 빠질 수 없어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정신이 들었는지 그때서야 딸에게 전화를 하고 지인에게 전화를 한다.
      안정을 찾고 차분해지니 고맙다며 집에 가라고 한다.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지켜줄 처지도 아니었다. 삶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집에 오니 1시였다.

       

      그 후로 며칠간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는다. 나중에 문자가 온 것은 중환자실에서는 전화를 압수당해 할 수가 없었다는 문자였다.
      1주일이 지나 딸기를 사들고 찾아갔다. 큰딸이 있었고 조금 있다 작은딸이 왔다. 소개하기 뭣했는지 엄마를 데려다 준 시인이라며, 농담 삼아 “애인 아녀” 변명을 하니, 딸들이 누가 뭐라 했냐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얼마 후 퇴원해서 집에서 쉬고 있단다. 직장에 나갈 만치 건강이 좋아졌다고 하니 도와준 보람이 있다. 내가 믿음이 갈만큼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 시켜준 여 시인의 정상적인 빠른 회복을 바란다.

       


      201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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